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헬렌 켈러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1999년부터 시작된 [[미국]]의 25센트짜리 동전 50개주 시리즈의 [[앨라배마]] 판의 모델이다. * [[일제강점기]]였던 [[1937년]]에 [[한반도]]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[[서울]](당시는 [[경성부]])에서 강의를 마치고 [[평양]]으로 향하는 기차가 [[개성시|개성]]에 잠시 정차했을 때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강연을 했다고 한다. [[http://www.imaeil.com/sub_news/sub_news_view.php?news_id=15010&yy=2017|대구에도 방문했다.]] 그리고 이후 [[6.25 전쟁]] 때도 방한한 적이 있다. * [[일본]]과도 상당히 인연이 있는데 1937년에 일본을 방문했고 [[아키타현]]에 가서 [[아키타견]] 하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키타견 1마리를 얻어가지고 와서 길렀다. 그 아키타견의 이름이 [[카미카제]]였는데 털이 부들부들했는지 헬렌 켈러가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.[* 그 유명한 자살공격 카미카제는 1944년 무렵부터 시작된 것이니 우리가 아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.] 일본 방문 당시 헬렌은 지갑을 도둑맞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인들이 '일본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'며 그녀 앞으로 돈과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. 참고로 같은 해 일본은 [[난징 대학살]]을 저질렀다. * [[중국]]도 방문하고 싶다고 본인이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으나 당시 중국의 상황이 군벌들간의 내전, [[중일전쟁]], [[국공내전]] 등등으로 난장판이라 성사되지는 않았다. * [[http://www.youtube.com/watch?v=Gv1uLfF35Uw|헬렌 켈러가 어떻게 말을 배우게 되었는지 설리번 선생과 직접 시연하는 영상]]. [[https://youtu.be/xlJp4Tksy2M|영어, 국어 자막 버전]] 동영상을 보면 말하는 사람의 목젖에 손을 대고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져 진동과 입 모양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. 이 교육법으로 처음 가르친 사람이 호렌스 만 농아 학교의 교사 새라 풀러였고 이후 설리번 선생도 이 교육법을 익혀 헬렌에게 가르쳤다. *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방과 손을 직접 마주 대고 상대방의 수신호를 촉감으로 느끼는 방식을 이용했다.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수년간 훈련을 계속해 자신의 입으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평생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도, 말을 할 때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적도 거의 없기 때문에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. [[https://youtu.be/8ch_H8pt9M8|#]] *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만큼 촉각이 아주 섬세하게 발달해서 자신의 방에 누가 들어오면 그 진동만으로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. * [[레즈비언]]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. 영어의 [[슬랭]] 가운데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이 연인이었다는 속설을 반영한 'Pulling a Helen Keller'라는 표현도 있다. * 헬렌 켈러의 성 Keller는 [[독일]] 쪽의 성으로 keller는 [[독일어]]로 "저장고"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. [[영어]] 단어 cellar와 같다. 헬렌 켈러의 조상은 독일이 아니라 [[스위스]]에서 왔다고 한다. 스위스의 국어 중 하나가 독일어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.[* 현대 독일의 모태인 중세의 [[신성로마제국]]에는 [[스위스]]나 [[네덜란드]], [[룩셈부르크]] 등이 포함되었다.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은 근대의 내셔널리즘 기준으로 보면 독일과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만 언어나 종교 등 전근대로부터 내려온 문화적 특성은 많은 부분이 독일과 유사한 것이다. 다만 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[* 당시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.]와 [[스페인]]의 [[동군연합]]이 해체됨에 따라[*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모두 [[카를 5세]]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이후 스페인은 카를 5세의 아들 [[펠리페 2세]]가, 오스트리아는 카를 5세의 동생 [[페르디난트 1세]]가 다스리게 되었다.] 스페인, 더 정확히는 스페인계 [[합스부르크 왕조]]의 영토가 되면서 점차 독일어권과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룩셈부르크는 근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프랑스어가 독일어보다 더 많이 쓰이게 되면서 현재는 사실상 프랑스계 국가로 여겨지기도 한다.] * 다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장애인임에도 장애인을 열등하게 표현하는 [[우생학]]을 지지했고 이에 대해 찬동한 적[* <더 뉴 리퍼블릭>에 기고한 글에서 그녀는 "생명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것은 행복·지능·능력의 존재 가능성인데, 열등하고 기형이며 마비되고 사고력이 없는 생명체에는 이러한 것들이 부재하다"고 했으며 "정신적 결함자는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"며 우생학적 이유로 장애 유아의 구명 수술을 거부하고 방치한 해리 J. 하이젤든을 지지했다.]이 있다. 21세기에 보면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당시의 분위기와 지식인들의 풍조가 그러했으며 그녀가 살아 있을 때는 아직 장애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[* 지금과 같이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가 '장애인'이라는 큰 범주로 묶이게 된 것은 장애인 인권 운동이 활발했던 [[1970년대]]부터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장애인이 신체적 장애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은 [[http://m.ablenews.co.kr/news/newscontent.aspx?categorycode=0006&newscode=000620200217132300565067|아직까지 남아 있다.]]] 이러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. 거기다 그녀와 인연이 있었던 [[알렉산더 그레이엄 벨]] 역시 우생학에 찬동했기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.[* 다만 벨은 우상학을 지지하되 그의 우생학 신념은 "장애인을 배척하자!"가 아니라 "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만들자!"였다. 애초에 그의 어머니도 청각장애인이었다. 전화기도 농아들이 원격으로 의사소통하기 위한 도구를 발명하다가 나온 것이다.] [[https://www.beminor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20384|관련 기사]] * 그녀와 같은 이들을 '시청각장애인'이라고 하는데 202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도 1만여 명이 있다. 하지만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수화와 점자밖에 없는데 인프라 및 지원이 매우 부족하여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56/0011251317?sid=102|#]] * [[찰리 채플린]]의 1919년작 <양지 바른 쪽(Sunnyside)> 촬영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.[[https://www.openculture.com/2022/08/when-helen-keller-met-charlie-chaplin-and-taught-him-sign-language-1919.html|#]] 헬렌 켈러가 [[사회주의자]]였던지라 이후 [[매카시즘]]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 이 만남은 찰리 채플린에 대한 공격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. *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번에게 시청각 장애 관련 교육을 한 사람은 [[로라 브리지먼]]인데 로라에게 시청각 장애 교육을 한 사람이 새뮤얼 그리들리 하우이다. 그리고 하우에게 처음 시청각 장애 교육을 한 사람이 줄리아 브레이스다. 즉, 줄리아 브레이스에서 새뮤얼 그리들리 하우, 하우에서 로라 브리지먼, 로라 브리지먼에서 앤 설리번, 앤 설리번에서 헬렌 켈러로 시청각장애 교육 사제계보가 이어지는 것이다.[[https://deafniche.com/the-amazing-story-of-helen-kellers-success-before-she-was-born/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